2023. 7. 12. 17:03ㆍ이슈
패션위크, 어떠셨나요?
덥고 길고 특히 지루했던 패션위크가 끝났다. 그리고 기다렸다는듯이 정보는 쏟아지고, 벌써부터 아직 지나가지도 않은 이번 여름을 그대로 둔 채, 내년 여름을 달리는 트렌드 보고서들이 범람하고 있다.
굳이 요약하면 내년에도 흔히 말하는 트렌드가 달라질 일은 없어 보인다.
아주아주 유치하거나, 아주아주 고급스럽거나. 비교하자면 성수동이나 청담동의 차림새의 차이라고 해야할까? 되게 구린 비교이긴 하지만, 더 정교한 분석으로 더 세련되게 표현한다고 해서 의미가 달라지진 않는다.
트렌드를 따라야.. 따를 수 있을까?
어쨌건 의류는 기호 상품이고, 우리가 트렌드라고 엿본것은 사실 우리의 생활과는 아주 거리가 있는 루이비통의 억대에 달하는 백이나, 발렌시아가의 4천만원 짜리 힐이다. 달나라처럼 닿을 수 없는 이것이 우리의 의복을 지배한다고 한다면 너무 슬프지 않을까?
하지만 지구 어딘가에선 당연히 세상에서 가장 창의적이어야 할 (한 짝에 2천만원 짜리 구두를 파니까) 디자인 집단에서 4천만원 짜리 힐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 힐은 머지 않아 여러 브랜드에서 복제될 것이고, 이어서 자라에 가판대에 올라오고 나아가 무신사의 온라인 브로슈어에 끌려나오게 될 것이며, 그렇게 사람들이 말하는 트렌드라는 공감이 형성되게 된다.
얼마 전 지나가다 세일을 시작한 자라 매장에 들린적이 있다. 그리고 가장 놀랐던 건 한 뼘되는 니트 베스트와 셔츠들이 남녀에 구분없이 여름 세일 섹션에 끝도없이 진열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한국이 일교차가 심한 유럽도 아니고, 밤까지 열대야가 진동하는 이 황량한 땅에서 대체 여름 니트가 왠 말인가?
트렌드라는 환상
하지만 많이도 입고 다니신다. 당연히 자라도 잘팔리니까 매장에 반을 니트로 꾸몄을 것이다.
굳이 추적하자면 이들은 라프 시몬스가 프라다로 거처를 옮기며 다시금 떠오르기 시작한 미우미우의 이전 디자인이다. 한뼘짜리 스커트와 매칭되는 한뼘짜리 니트, 브라탑. 21년에 공개된 이 디자인은 말씀드렸다시피 여러 브랜드에서 복제되고 복제되다가, 결국엔 여러분이 보는 자라와 쇼핑몰까지 흘러 내려오게 된 것이다.
결국, 우리가 실질적으로 소비하는 트렌드라는 것은 먼저 간 이들이 소비하고 남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리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것은 미우미우가 제안했던 22년 봄 (심지어 이번 시즌도 아니다) 에 대한 이미지였을 뿐이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트렌드의 의미와는 다르다.
우리 소비에 트렌드라는 만능이자 무형의 지표가 들어선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사실 이건 지표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언뜻 생각해도 일부의 창작 집단이 작위적으로 만들어 낸 이미지 따위가, 정량적으로나 정성적으로 의미있는 사회적인 통계라고 보긴 어렵다.
어쨌건, 우리에게 이런 가이드가 필요하게 된건 결국엔 명품을 왜 소비하는가? 와 맞닿아 있다. 이와 관련해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연구들이 있지만, 그 중 가장 많이 인용되는 부르디의 연구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그는 명품을 구매하는 것은 계급제도가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 상대방과 나를 구분지으며 우월한 사회적 지위를 차별화하는 과정으로 본다.
구분짓는다는 것은 결국에 누군가는 우에 위치하고 누군가는 열에 위치로 격하된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 보이지 않는 꼭대기 어딘가에서 내려온 트렌드라는 신비한 동아줄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기를, 뒤쳐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를 부여잡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의 이런 노력은 의미가 있을까?
있었을까? 어떨까?
미안 없어~
(나에게) 쉽고 아름답고 좋은것만 해요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옷일 뿐이다. 여러분의 피나는 노력에 누군가에게 힙하다거나, 트렌디하다는 칭찬을 해줄 수 있겠지만, 이것은 사회와 신분을 가로지르는 대단한 어떤 증서가 되진 않는다. 그리고 본인도 겪어본 바로는 아무리 좋고 아무리 멋지고 예쁘고 비싼 옷을 입어도 나 외의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보지도 못한다. 가끔 감사하게도 세탁소 사장님은 알아보시더라. 하지만 그 뿐이다.
연초에 싱가폴 사회를 말 그대로 뒤집어 놓은 한 소녀가 있었다. 17세의 소녀는 여느 또래의 친구들처럼 틱톡을 사랑했고,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선물받은 가방을 자랑하기 위해 '내 첫 명품 가방' 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틱톡 계정에 영상을 업로드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기대와는 달리, 한국과 같이 치열한 싱가폴 사회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녀가 올린 7만원 짜리 가방을 명품이 아니라며 조롱했고, 그녀의 이야기는 싱가폴의 총리에 까지 닿아 사회적인 명망이나 지위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아달라는 대국민 연설까지 이루어지게 된다.
아버지가 선물해줬다는 그녀의 7만원짜리 가방은 명품일까 아닐까? 굳이 브랜드를 말하진 않겠지만, 누군가에게 그것은 명품이 될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명품에 기준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자의적으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다시 부르디로 돌아가서 얘기한다면 우리는 계급사회가 철폐된 현대 사회에서 굳이 다시 계급을 만들어 스스로를 옥죄고 있는 것이다. 트렌드라는것도 다르지 않다. 왜 우리는 자신이 아닌 타인의 기준으로 스스로를 평가할까? 그것이 본인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겠다면 그러한 자학행위를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이 한 여름에 더위를 참아가면서까지 니트를 입어야 할 이유가 없고, 태그를 들춰가며 브랜드를 일일히 따져가며 검색을 해야 할 이유도 없다.
옷은 옷이다. 나에게 어울리고, 상황에 꼭 맞고, 날씨에 맞으면 그만이다. 분홍색 티셔츠여도, 길이가 애매한 청바지나 스커트여도, 낡은 스니커즈여도 상관없다. 모든 사람의 기준에 맞출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보편적인 디자인과 트렌드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에 하나 아이폰 (?) 처럼 그런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빗겨 나간다고 한들 아무도 손가락질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린 트렌드라는 누군가가 아주 임의적이고 매우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트렌드라는 허구의 창작물에 구속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애초에 지금까지 본인 인생 본인 하고 싶은데로 살지 않았는가? 갑자기 이제와서 모범생처럼 매뉴얼에 따르실 필요가 있을까?
쇼핑은 언제나 즐겁기만 해야된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머리 곯며 고민하지 마시고 그저 즐겁고, 갖고 싶은거, 보고 싶은것만 보면서 사시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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