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이 없는 새로운 이야기, 올해의 남성복 디자이너 보디 (Bode)

2022. 11. 24. 08:46이슈

새로움에 대한 강박증

BODE의 에밀리 보디와, 그녀의 최근 컬렉션들




밀레니얼이라는 이 정신나간 시대를 대변하는 가장 큰 키워드는 새로움일 것이다. 구글이 나왔고 아이폰이 나왔고 무수히 많은 혁신이 우리 앞에 벌어졌고 사람들은 그것을 쫓고 쫓아갔다. 패션은 어땠을까, 오프 화이트가 등장했고 베트멍이 나왔으며 발렌시아가는 백 만원짜리 다 떨어진 신발을 팔았고 루이비통은 힙합을 입었다.

새로움, 혁신이라는 단어로 무장한 앞서 간 선구자들에게 우리는 대항할 길이 없었다. 그들을 쫓지 않는다면 루저가 되었고 뒤쳐지고 싶지 않았기에 새로움과 이를 쫓는 지루한 과정은 트렌드가 되어 우리를 다시 강박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쫓는 것이 과연 혁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이폰이 세 번 접어서 주머니에 쏙 들어간다 하더라도 그것은 혁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분명 누군가는 혁신이라고 볼 것이고, 누군가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애매하고 위대한 새로움이라는 경계 앞에서 우리는 무익한 레이스를 현재까지도 계속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디의 이야기는 굉장히 매력적인 이야기이다. 몇 년간 연이어 최고의 남성복 디자이너로 뽑힌 소감에 드디어 사람들이 보데가 아니라 보디로 제대로 읽어줘서 감사하다는 소박한 감사를 남긴 디자이너 에밀리 보디. 패션은 새로움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는 항상 과거를 돌아봐야 한다는 30대 초반에도 벌써 꼰대같은 소리를 하는 이 어린 여성 디자이너는 전혀 새롭지 않은 디자인과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들로 이미 자신의 브랜드를 럭셔리의 대열에 올려 놓았다.


그녀는 어떻게 새로움이라는 늪에서 탈출할 수 있었을까?

새로움의 반전은 뭘까?



미국 출신의 디자이너 에밀리 보디. 그녀는 소위 잘나가는 파슨스를 졸업했고 잘파는 랄프 로렌과 마크 제이콥스에서 경력을 쌓았다. 마크 제이콥스와 랄프 로렌, 언제나 잘팔려야 하는 브랜드는 그녀에게 맞지 않았을까. 어렸을 적 부터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빈티지와 직물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갖았던 그녀. 그녀는 벼룩 시장에서 얻은 수 십년 된 담요와 손수건과 같은 몇 가지 빈티지한 패브릭들을 손수 기워 자신의 아파트에서 브랜드 보디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에 공개된 그녀의 제품들. 할머니의 담요로 만든 자켓에 모든 사람들은 그녀의 기행을 비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보디와 같은 브랜드는 셀 수 없을 만큼 세상에 나오고 하룻밤에도 셀 수도 없을 만큼 사라진다. 그렇게 보디의 시작은 그만큼 진부하고 되게 매력없고 되게 현실적인 우리들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익숙하지만 낯선 보디의 제품들



하지만, 그녀는 이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걸까? 이어지는 뉴욕 컬렉션에서는 비닐, 매트리스, 태피스트리 외 에도 버려지고 쓰이지도 않는 패브릭들을 이용해 현대적인 남성의 옷을 기워냈고, 그해 보그의 패션 펀드를 받으며 미국에서 가장 기대받는 브랜드로 성장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브랜드 보디는 딱 두가지의 키워드로 전개된다. 첫 번째는 빈티지 패브릭. 사람들이 쓰지도 쓸 생각도 하지 않는 패브릭들로 두 번째는 미국식의 웨어러블한 의상을 만든다는 것. 보디의 키워드는 어렵지도 새롭지도 않지만, 보디는 이것으로 누구도 이루지 못한 성공을 이루어 냈다. 그렇다면 그녀의 성공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난 솔직히 모르겠다. 안나 윈투어의 눈에 띄었다는 것 외에는 SNS나 공방에서 활동하는 빈티지 메이커들과 보디의 차이점을 난 솔직히 찾지 못하였고 관심도 별로 없었다. 그리고 그 사이 그녀는 인도와 페루를 넘어 전 세계에서 자신만의 패브릭을 찾아 헤맸고, 그러면서 제리 로렌조의 피어 오브 갓을 넘어섰고, 톰 브라운을 재꼈으며, 최근에는 가장 핫한 브랜드 텔파 마저 재치고 미국 최고의 남성복 브랜드가 되었다.

반전이 없는게 반전이란다



그녀의 보디의 이야기는 눈물나는 아메리칸 드림도 아니었고 끈질긴 도전정신과 젊음을 이야기 하지도 않았으며, 넊이 나갈듯한 섹시함을 팔지도 않았다. 그냥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자신이 좋아하는 것 사이의 어떤 평범한 것을 만들었고, 팔았다. 계속. 끝이다. 그러다 안나 윈투어라는 위대한 거물의 눈에 띄었고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30대 중 하나이자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남성복 디자이너가 되었다.

보디의 연 이은 수상 이후 보디 찬양론자들이 늘고 있다. 빈티지와 혁신과 헤리티지가 어쩌구 저쩌구...
그래서 살거야? 안살거잖아



보디의 성공은 어찌보면 예견되어있을지도 모른다. 미국 패션 최고의 명문대학을 나왔고 최고의 브랜드에서 커리어를 쌓아서 성공했다. 여기에 그녀의 눈물겨운 노력과 인생사를 넣어 감정을 호소할 수야 있겠지만 이곳에 반전은 없다.

반전은 오히려 그녀의 독특한 상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녀는 찾는 것을 떠나 다루기도 어려운 작물들로 고작 투박한 워크자켓 따위로 만들어왔다. 그녀는 단순히 자신의 제품을 팔기 위한 목적으로 그런걸 만들었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가 그러길 원했다면 마크 제이콥스에 남아 있었어야 했으며, 그녀가 돋보이길 원했으면 그 독특한 직물로 다른 제품들을 만들어야 했다.

그녀는 독특하지만 친숙한 피스로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렸다. 언제나 우리가 쉽게 입는 자켓이나 티셔츠나 청바지는 그녀의 새로움을 거쳐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피스들이 되었고, 보디라는 브랜드를 대중에게 알리는 동시에 정신 나간 가격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여 사람들로 하여금 전혀 대중적이지 않은 낯설고 럭셔리한 브랜드로 인식하게 하였다.

탁월한 포지셔닝이었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보디에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순박한 그녀의 조용한 열정이 아닌 몽환적인 표정 뒤에 가려진 이런 여우와 같은 교활한 면모이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대단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브랜드 보디의 이야기가 아니라 보디의 성공이야기였다. 사실 브랜드 보디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정말 너무 다양한 직물을 사양하고 요즘엔 초반의 포트폴리오를 넘어서 다양한 제품들도 선보인다.

딱히 입고 싶진 않지만 보고 싶고 만져보고 싶은 22년 가을, 보디



친숙함을 낯설게 만드다는것,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그 쉽지 않은 일을 해낸다면 보디처럼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그녀의 감각적인 센스와 열정도 필요하다. 여러가지 숙제를 남기는 보디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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