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20. 12:53ㆍ이슈
활력을 잃은 패션쇼, 그리고
파페치부터 매치스패션의 폐업 게다가 패스트 패션에 대한 악재까지, 코로나 이후로 한껏 부풀었던 패션 산업이 다소 침체를 겪고 있는 요즘, 그나마 남아있는 아직 머리가 덜 깨졌거나 매우 부유한 고객을 지키기 위한 브랜드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이로 모든 브랜드가 조용하고 우아한 차림을 쫓으며 가장 큰 축제인 패션위크 마저 트렌드에 따라 심심하게 지나가는 요즘, 한 브랜드가 언론에 당차게 오르내리며 씹히고 있으니, 역시나 그 주인공은 발렌시아가 Balenciaga 였다.
테이프 팔찌, 무엇이 문제였을까?
사실 나는 이게 그렇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 내릴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감이 떨어진걸까?).
아무튼, 몇몇 언론에서는 박스 테이프와 비교하고 있으나 발렌시아가의 팔찌는 명백히도 팔찌이며 다만, 테이프 모양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에 대해 대부분의 조롱속에 일부는 작가의 관점을 제시하는 개념미술로써의 현대미술 영역에서의 디자인의 가치를 설명하고 있기는 하나, 이래나저래나 사실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어쩌면 굉장히 경솔하고 무례하고 오만했던 명품 회사의 조롱일 수도 있고, 어쩌면 현대 미술의 비약을 가져 온 혁신적인 디자인일 수도 있다. 아마도 이것에 대한 판단은 개인의 가치관마다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이 디자인이 발렌시아가라는 고가의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선보이기엔 대단히 리스크가 있는 디자인이라는 것은 프랑스에서 저 멀리 떨어진 한국 대중들의 분노가 증명하고 있다.
발렌시아가가 지구 반대편에서도 벌어질 이런 대중들의 반감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왜, 발렌시아가는 이런 디자인을 선보였던 것일까?
해리포터와 발렌시아가-화 Balencia-cification, 그리고 발렌시아가
작년 챗GPT가 대중화 되며 AI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올라가던 쯔음하여, 하나의 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메가히트를 치게 된다. 그 주인공은 딥페이크와 AI를 통해 완성된 발렌시아가 버전의 해리포터.
영상이 화제가 되자 영상의 제작자인 Demonflyingfox 는 몇 가지 인터뷰에서 소회를 밝히며, 발렌시아가라면 자신의 장난을 유쾌하게 받아 줄 것이라 생각하여 발렌시아가-화 영상을 제작했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발렌시아가의 일련의 사건들로 침체를 겪던 중 해당 영상이 전 세계적으로 바이럴 되며 발렌시아가는 영상에 대한 반사효과를 톡톡히 누렸겠으나, 발렌시아가는 이에 대한 어떠한 공식적인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아니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다른 의미에서 분노 했을지도 모르겠다.
잠시 발렌시아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발렌시아가는 뎀나 즈바살리아 체제 이후 자타공인 십년이 넘는 기간동안 패션의 트렌드를 이끌어 가며 패션뿐만 아니라, 창의성에 있어 지구상에서 가장 진일보한 집단 중 하나였다. 하지만 AI 영상의 히트는 발렌시아가의 가장 독창적이라는 스타일 또한 기계적인 방법으로 복제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들이 영상을 통해 받은 충격을 우리가 가늠할 수 있을까?
AI 대중화 이후 많은 분야에서 인간의 노동이 기계로 대체될 것이라 예측 되었지만, 인간의 창의성에 속하는 디자인 분야에서 마저 그들은 AI의 도전을 받게된다. 그렇다면 그들의 미션은?
기계가 아닌 인간만이 창조할 수 있는 창의적인 디자인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창의성은 럭셔리의 표준이 될 수 있을까?
여러 인터뷰에서 발렌시아가는 창의성이라는 것을 럭셔리의 가장 주요한 가치로 주장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이미 의류나 잡화가 공임비용을 넘어 N백만원이 넘어가는 순간, 물건의 효용이라는 가치는 합리적인 소비의 척도가 될 순 없다. 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물건에 있어서 그들만의 독창적인 창의성을 통해 현대예술의 비합리적인 가치를 부여한다.
어찌보면 이것은 물건의 효용을 중시하는 대중에겐 기만일테고, 어찌보면 일부의 계층만 즐기는 현대예술의 대중화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들은 이를 통해 AI가 혀가 있다면 혀가 내두를 만한, 기계가 할 수 없는 인간의 독창적인 디자인을 보여주었다.
어떤 이는 이에 대해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박스테이프를 손에 감는걸 누가 생각 못해?' 혹은 '테이프로 의류를 감는걸 누가 생각 못해?' 라고.
발렌시아가는 말한다. 기계는 못한다.
어떻게 보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기계는 못한다.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어쩌면 발렌시아가가 테이프로써 보여준 그들의 담화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지침이 되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 내용의 일부는 쇼 이후, 보그 런웨이와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 즈바살리아의 아래 인터뷰를 참고함.
https://www.vogue.com/fashion-shows/fall-2024-ready-to-wear/balencia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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